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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아일기

다혜를 귀여워 해주면 안되요. 하는 우리딸 / 의사 말보다 아이를 신뢰하세요.

아이들은 알고 있습니다. 부모마음을 


4살되면서 참 미울때 항창 미운 나이입니다. 생각해보면 독선도 강하고 이해가 안되고 또 말도 안듣습니다.

딸이라서 때리지도 못하고 웃기기도 엄청 웃기고 옷하나 입히는것도 온갖 마음을 다 맞춰 주어도 하기 싫은건 죽어도 안한다는 식입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우리 어머니가 하시는 말씀이 니가 더 했다. 하십니다. 가만히 생각해보면 기억은 없는데 우리 엄마 아빠가 뭐 잘했다가 생각하시는 분 100분 중에 10명 있습니까?


여기서 얼마전에 의사가 하는 말이 생각납니다. 남이 미워하는 애로 만들지 마라 야단도 치고 해라. 그 의사 지금 만나면 줘 패고 싶습니다. 자기는 4살에 잘했냐고 ? 의사가 더 문제를 만들고 있습니다. 마치 문제가 아이인듯, 엿먹어라 하고 싶습니다. 넌 잘했냐고 그리고 집에서 그렇게 하냐고 아마 책본다고 쳐다 보지도 않을겁니다. 일요일까지 9시나와서 저녁 9시에 퇴근 하는 의사의 일상이라서 육아를 해보지도 못했을겁니다.


부천에서 유명한 어린이 병원 의사인데 치료해 달라는 치료나 해주지 나설일은 아니였다는겁니다. 4살때 당연한걸, 문제로 만들어서 애와 엄마 아빠만 힘들게 하는겁니다. 그리고 자기 한테 영육아 검진 받게 하기 위한 오로지 그 목적을 위해서 말입니다. 또는 책낸 의사는 책을 거 보도록 하기 위해서 말입니다.


달래가면서 이해를 시키면 되지 뭔 야단을 치며 야단을 칠때 법칙을 이야기 합니까? 법칙이 있다고 합니다. 확일화하고 있습니다.  웃기지 말라고 하세요. 4살 아이의 머리속은 4살 아이의 생각이 있습니다. 그 생각을 어른 기준에 맞춰서 이해 하고 가르치려고하니깐 문제가 되는 겁니다.


밥을 안먹는다 왜 안먹는지 생각해 보면 왜 밥 아침에 기억에 먹었는데 내가 배가 부른데 왜 해야 되는지 가르칠 생각없이 엄하게 야단쳐야 된다고 이야기 한다면 조선시대같이 먹을게 부족하고 양도 적지만 하루 종일 아이와 같이 있거나 밭에 일할때 마음대로 풀어 놓을수 있는 시대에서 가능한겁니다.


지금은 아빠와 엄마가 도시 한가운데서 교육합니다. 아이들도 생각이 있습니다. 왜 옷을 지금 입었는데 또는 난 분홍색 옷을 입고 싶은데 이걸 억지로 입어라 하냐는 생각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걸 먼저 이해하고 접근해야 합니다.


엄마 아빠가 10분만 먼저 생각하고 가르칠것과 야단칠것 등을 구분해야 합니다. 색연필들을 막 던지고 뿌린다면 그건 야단쳐야 겠죠. 하지만 그 방법도 던지지 말라고 하는게 아니고 왜 던지면 안되는지 이야기를 해야 한다는겁니다.


아이는 던지는것도 놀이고 어지럽히는것도 놀이입니다. 갑자기 이전에 가지고 놀던 장난감에서 가능했던 일들을 못하게 하는지 이해를 못하는 가운데 야단만 친다면 아이들은 엄마 아빠가 부당하다고 생각합니다.


주제 파악 못하는 의사의 충고 그 의사 집에 가보세요. 더합니다. 믿지 마세요.


항상 하는 이야기 인데 대한민국의 모든 육아는 100분율로 만들고 확일화 하고 있습니다. 아이들은 다른데 말입니다. 머리 크기 키 등등 다 기준을 만들어서 이기준에서 50% 미만이면 문제가 있는 아이같이 느끼게 만들어 놓았습니다. 소아과의 전략입니다.

아이들이 태어나면서 머리 크기와 키는 상위 몇등입니다. 이런씩입니다. 100명 세워 놓고 보면 얼마다는 식이죠. 이것 부터 보지 마세요.

아이들 키는 중학교때 커는 아이들도 있고 고등학교 졸업반에서 반에서 가장 작은 아이가 클수 있습니다. 

망각 하시지 마세요. 아이들은 그냥 자라는 공산품이 아닙니다.


마음 아픈 외로운 한마디 '다혜를 귀여워해주면 안되요'


이 외침을 들었을때 아차 했습니다. 아이들 믿어야 되는데 의사를 믿었다는겁니다. 의사의 주제 모르는 말한마디 저도 천박지축에서 4학년되면서 변했습니다. 소리 치고 돌아 다니다가 그 행동이 부끄러워서 고쳤던 기억도 있고 그뒤 부끄러움이 많은 아이였습니다. 사춘기때 또 변합니다. 아이들이 소리치는건 당연합니다. 4살때 소리치지 않으면 언제 치나요. 


이제 말을 어느정도하고 말의 뜻도 어느정도 알아 들을 나이입니다. 얼마나 잘들리겠습니까? 그런데 그런 아이의 말의 목소리가 크다고 해서 버릇이 없다는것은 잘못되었습니다. 언제 버릇을 가르쳐 주지 않았습니다. 모조건 안된다 나쁘다 이게 하루종일 입니다. 그러니깐 아침이 착하던 아이가 저녁되면 스트레스 때문에 과격해 지고 나중에는 아빠가 한마디만 해도 놀라는 버릇이 생기는 겁니다.


엄마 아빠가 4살로 돌아 가야지 애가 엄마 아빠의입장이 될수는 없는 겁니다. 


대한민국 육아는 애들이 천재로 알고 있습니다. 소아과 선생님들 책이 잘못되었다는점이 아이들이 그렇게 책에 나온대로 자라는게 아닙니다.

아이들은 버릇을 모릅니다. 자기 하고싶은데로 하는것이고 그게 본능입니다. 다만 부모님들은 그게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주거나 또는 다칠수 있다는 것을 파악하고 바로 잡아 줘야 하는데 그 방법이 야단치는게 아니라는 겁니다.


이제 이야기를 하면 알아 듣습니다. 부모님 야단 치면 칠수록 엄마 아빠를 신뢰하지 못하게 되는겁니다. 엄마 아빠가 더해 놓고 우리 어릴때는 더하지 않았나요. 


카페가보면 아이들을 방치해 놓고 전화를 하루 종일 하시는 엄마가 있습니다. 이해를 합니다. 얼마나 스트레스 받겠습니까 이때 수다를 떨어야 엄마도 살죠 그런데 아이는 유아 테이블에서 떨어지고 다른 사람 테이블에 가서 과자를 마음대로 집어 먹고 하는데 그냥 둡니다. 나중에 보시고는 전화도 안끊고 애를 데리러 가서 고개만 까딱하시고 애를 안고 옵니다.


그런데 애입장에서 보자면 애는 엄마가 안쳐다 봐 줍니다. 그런데 다른 테이블의 누나 언니가 너무 이쁘게 보고 웃어주고 인사도 해주었습니다.  그래서 아장 아장 가서 과자도 먹고 같이 놀아줘요. 안깁니다. 얼마나 귀여우면 안아주고 과자도 같이 줍니다.  누나와 언니들도 좋아 합니다. 그런상황을 엄마는 못보고 그냥 실례인듯 데리고 와 버립니다. 아이입장에서는 엄마가 이해가 안되는겁니다. 언니들이 좋아하고 갚이 놀자고 해서 안아주고 놀아 주는데 갑자기 안아서 데려 가는 겁니다. 한번 전화를 끊고 물어 보세요. 죄송해요. 우리애가 언니 누나를 좋아해서요 하면 괜찮아요. 하면서 더 같이 놀고 싶다고 하는 학생들도 있습니다. 그때는 그냥 두어도 됩니다. 대가족이 아니기 때문에 아이는 그런데 놀란듯 데려 가버리면 그상황이 이해가안되는 겁니다. 그뒤로 엄마가 전화기만 들면 짜증 냅니다. 


엄마도 이런 잘못을 합니다. 하지만 얼마나 힘들면 저럴까 하고 다들 이해를 합니다. 


저녁에 자리에 누워서 '다혜가 미안해' 하는 아이의 진심


아이들은 알고 있어요 스트레스 받아서 상처 받아 소리지른 상황 엄마 아빠가 모르는 자신이 눈에서 보는 세상의 상황 이야기를 해도 못알아 듣거나 이해를 못하는 어른들을 소리 질러서 주장하려고 했다는겁니다. 버릇이 아닙니다. 할수 있는거라고는 소리라도 크게 이야기를 해보는겁니다. 


그리고 잠자리에 누워서 엄마 아빠와 눈을 맞추면서 속마음을 이야기 합니다. 느닷없이 다혜가 미안해 고마워 사랑해 하는겁니다. 이건 모든 아이들에 해당되는 이야기 입니다. 다들 겪어 보실겁니다.


눈을 맞추고 들어 보세요. 못알아듣는다고 제대로 이야기 하라고 하면 할수 있는 말이 한정되어 있는데 더 이상 어떻게 이야기를 해야 하나 그러니깐 큰소리를 치는 겁니다. 버릇하고 아무런 관련이 없습니다.


의사말중에 부모가 해야 되는 이야기를 속 빼고 하고 있습니다. 왜 냐면 소아과 의사도 모릅니다. 자기도 배워 보지 못했고 자기도 그 아이의 입장이 되어 보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아이의 마음이 되어 보기 힘들면 입장만이라도 바꿔서 한번만 생각해보자는 겁니다.


큰소리 쳐서 다시 그행동을 하지 않는다고 애가 그 버릇을 고친게 아닙니다. 이해를 못하면서 억압 받는 겁니다. 이해를 시켜 줘야 하는데 같은 어른을 상대로 하는것과 다른 방법으로 이해를 시켜 줘야 합니다.


그냥 눈을 맞추고 이야기해 보세요. 그럼 점점 그 버릇을 고칩니다. 아니면 그행동은 언젠가는 다시 나타납니다.


누가 중요한가요. 처음 만난 의사의 말과 하루 하루 세상을 배우는 우리 아이의 세계


전 이야기 하고싶은게 제가 잘못한것을 이야기 하고싶습니다. 세상에 완벽한 부모는 없습니다. 세상에 완벽한 4살 아이는 없습니다. 그걸 완벽한 4살의 아이가 10살 아이의 행동을 하기를 원합니다.

밥먹다가 못먹겠다는건 맛이 없거나 먹기 싫은겁니다. 그런데 버릇없다고 할수 없는거죠 . 하지만 한가지 뱉어 버리는것을 버릇없다는 한마디로 정의하는게 잘못되었고 일단 못먹겠다는것 버리게 하고 여기서 중요한건 방법 입니다. 그냥 뱉는게 아니고 방법은 접시에 버리도록 하는 겁니다.


그리고 김치를 안먹는것은 김치가 매워서 안먹는다는건데 억지로 먹이면 어쩌면 평생안먹습니다. 이럴떄는 씻어서 먹이거나 볶아서 먹여보고 몸에 좋은 것이고앞으로 먹어야 된다는것을 알려 주는겁니다. 그럼 백김치부터 하나씩 먹습니다. 


잘먹던 아이가 한번 무척 매운김치를 먹고 겁먹고 있는데 먹어라고 하면 어른 들도 못먹습니다. 하나씩 엄마 아빠도 배워가는겁니다.





아이를 더 사랑한다면 아이를 믿으세요. 잘 자라고있습니다.


4살은 배워야 되는 아이이지 배운것을 행동하는 아이가 아닙니다. 사랑하는 아이를 버릇 없이 잘키웠다는건 어떻게 보면 모든 면에서 차단하고 억압속에 넣지 않았나 생각해보세요. 

아이가 이해를 하고 안하는건 확실히 배운거고 억압이라는 생각이 안들겁니다. 하지만 그게 아니라면 한번쯤 다시 생각해 봐야 합니다. 엄마 아빠가 편하게 만들어가고 있는건지 사회를 배워가고 있는건지 아니면 엄마와 아빠의 테두리에 넣어서 키우는게 아닌지


엄마 아빠가 해야 되는건 사랑하고 조심하고 또 가르쳐 주는겁니다. 큰소리로 야단치는게 아닙니다. 어쩌면 우리 아이들은 키즈 카페 외 놀곳이 없는 세상에서 가두어서 커가고 있지 않는지요.


그리고 소아과 의사 이야기를 믿지 마세요. 그들은 부모가 해야 되는 책임은 말하지 못합니다. 한번도 그런걸 배우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돈버는것 외 사랑으로 키우는것을 배운 의사는 거의 만나기 힘듭니다.